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전시
Incomplete sync: 미완의 동기화
박주희, 이영서, 조아현, 최규희, 한정민
08/12/2026 ~ 08/23/2026
하나로 맞춰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완벽한 포개짐은 서로를 지운다. 일치가 곧 어느 한쪽의 생략을 의미한다면, 딱 맞아떨어지는 규칙이란 지루한 관성일 뿐이다. 이 전시는 그 편리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정렬되지 않은 각자의 속도와 궤적을 있는 그대로 펼쳐 놓는다.
다섯 명은 하나의 통일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뭉친 팀이 아니다. '전시'라는 한시적인 조건 속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독립된 연구자들에 가깝다. 그렇기에 억지로 서로의 색을 섞거나 조율하려 애쓰지 않았다. 수렴을 목표로 삼지 않는 상태에서, 각자의 내부 논리에 충실한 작업들은 한 공간 안에서 필연적으로 미세한 마찰을 일으킨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동기(asynchrony)는 물과 기름이 한 그릇 안에서 섞이지 않고 제각각의 경계를 유지하듯, 서로 다른 레이어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단단한 거리감이다. 완성이 유예된 이 간격 속에서, 하나로 뭉뚱그려졌던 개별적인 형태와 존재감은 비로소 제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끝내 맞춰지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드러내고, 하나의 박자에 속하지 않고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단단히 존재할 수 있음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미완(未完)은 결핍이 아니다. 완성되지 않은 결말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서로를 더 선명하게 마주한다. 빗나간 것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각자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여기 존재했는지를 본다.
박주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형성되는 태도와 감정의 구조를 탐구한다. 상처를 피하거나 내면을 숨기려는 인간의 방어 기제는 자신을 지키는 수단인 동시에 타인과의 단절을 초래한다. 작가는 이 역설적인 구조를 자연 속 생명체의 생존 기제, 즉 보호색이나 의태(擬態)와 같은 은폐의 방식과 연결 지어 바라본다.
그의 화면에서 언어로 차마 다 뱉어내지 못한 미묘한 감정들은 직접적으로 발화되는 대신 시각적인 층위로 변환된다. 작가는 한지, 직물, 레진 등 다양한 매체를 덧입히고 쌓아 올리는 수행적 과정을 거친다. 흐려지고 겹쳐진 이미지와 화면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색감은 감춰진 내면을 은유하며, 재료들이 얽히고 응집되며 만들어내는 물성은 곧 감정이 축적되어 단단한 보호막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감정의 지층과 그 안에 남겨진 흔적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내면을 온전히 보호하려 했던 묵묵한 방어의 시간들은, 그의 작업 안에서 상처와 회복이 공존하는 단단하고 따뜻한 위로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이영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시선에서 출발해 감각과 인식이 교차하 며 세계의 표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이는 단순히 비가시적인 대상을 시각화하려는 표피적 욕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대상과 마주한 순간 스스로의 감각과 시선이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투명하게 기록하려는 지독한 사유의 과정에 가깝다.
편의점 근무 중 문득 건네받은 오이와 딸기, 치료의 과정에서 감각이 단절된 채 상상에 만 의존해야 했던 기묘한 순간, 그리고 종이의 물성을 따라 손끝의 습관적인 선을 받아 적던 장면들. 이 파편화된 일상의 순간들은 모두 작가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의 결정적 단면들이다. 평면 위에 보조선을 구획하고 그
사이의 틈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며, 우리를 둘러싼 시각적 질서와 기준이 어떻게 구축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이 집요한 추적은 화면 속 구조가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인 동시에, 도리어 넘어서야 할 구조적 경계라는 모순적 진실을 드러낸다. 이 맥락에서 드로잉은 형상을 빚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감각이 시간이라는 축 위를 지나며 남긴 선명한 흔적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의 움직임은 곧 생각의 궤적이자 감각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단단하던 기준들이 희미해지고 감각과 사유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을 가둔 경계 밖으로 감각을 확장하려 한다.
조아현은 '살아가려는 힘의 형태'를 그리는 작가이다. 10월, 나뭇잎들의 색이 변해간다. 땅을 보고 걷던 나날 속, 문득 시선을 올렸을 때 펼쳐진 풍경이 있었다. 햇빛과 함께 바래진 잎사귀들이 살랑이고 바스락거리며 감각을 톡톡 두드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늘 곁에 있었고 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물들을, 함께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관찰하게 되었다.
위로 뻗어나는 나무 가지들, 벽돌을 뚫고 자라나는 풀들의 생명력,
그리고 삶을 버텨내는 인간의 힘. 이들에게 차이점이 있을까?
그들은 붓을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직선인 듯 아닌 듯 일렁이는 선들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겹쳐지며 화면을 채워간다.
이번 전시에서는 왼쪽의 작은 캔버스들로 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의 색을 기록하고, 마지막에는 식물과 인간이 함께 지닌 생명력을 담아낸다.
최규희는 주거 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수납용품, 이삿짐 광고, 부동산 정보와 같은 일상 적 시각언어가 개인의 삶과 감각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탐구한다.
사회 구조를 직접 재현하거나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생활 속 물건과 이미지의 형태로 번 역되어 나타나는 지점에 주목한다. 반복적인 이동과 제한된 거주 조건 속에서 생산된 기 능적 언어와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회화의 느린 시간 안으로 옮긴다. 확대와 반복, 표 면과 물성의 재현을 통해 익숙한 시각언어 안에 내재된 주거의 조건과 적응의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한정민은 대상을 화면 중심에 집요하게 위치시키고, 매끈한 표면과 세밀한 면 분할을 통해 세상을 시각적으로 정돈한다. 작가는 서사의 단정을 피하고자 인물의 정면성을 지우고 익명화하는데, 이는 관객의 사적인 감상을 차단하는 방어기제이자 조형적 밸런스에 집중하게 만드는 회화적 장치이며, 감정의 과잉을 걷어낸 화면 속에서 관객은 인물 너머의 사연을 캐내기보다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와 정돈된 시선의 거리감을 경험하길 바란다.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