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동(朴水東) Park Soo Dong

작가소개

1965년 만화 《천연기념물》로 데뷔하였으며 선데이 서울에 만화 《고인돌》을 연재하여 고인돌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감있고 익살스런 그림체가 인상적이다.

고인돌은 폭소보다 씨익 웃는 것을 요구한다. 인생을 구차하게 설명 하지 않는 대신 감추어

진 본성을 기묘하게 절개하여 보여준다. 박 수동의 고인돌은 인간애를 저버리지 않는 따스한 시선이 있어 좋다. 권위도 없고 뽐냄도 없다. 그저 사람 답고 동물 답고 약간 모자란 듯 한 가슴을 느낄 수 있어 예쁘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심증을 헤아린 한편의 콩트를 연상시키

는 그의 작업이 우리들을 기쁘게 해서 신난다.

김 홍신 (소설가)

롯데제과의 스크류바, 롯데삼강의 빠삐코 CF에서 고인돌 주인공들이 출연하였으며, 각 제품 포장지에도 고인돌 주인공들이 디자인되어 있다.


박 수동의 만화의 성은 건강한 남자와 건강한 여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에로틱한 만화는 성교육에 필요한 건전한 만화일지 모른

다.성의 분배가 식량의 분배와 마찬가지로 억압없이 예기되고 토론되는 사회 그 사회의 도

래를 위해 박 수동 역시 싸우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김 현 (문학 평론가)

……… 박 수동의 재능이 그 어떤 소재에서보다도 더 충분히 구사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에로티시즘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는 농도 짙은 에로티시즘을 다루면서 결코 천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품격을 유지한다. 나는 그의 그러한 에로티시즘을 단원 김 홍도나 혜원 신 윤복

의 풍속화에서 엿볼 수 있는 한국인의 전통적 해학과 골계의 맥락에서 찾고 싶다.

이광훈 (문학 평론가)

오늘 21 세기를 눈앞에 둔 세련된 도화지 속의 박 수동은 우리 앞에 하나의 반역으로 존재

한다.그는 그의 만화 속에서 일상성에 안주하기를 끝없이 강요하는 규범 가치와 기존 관념

에 반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직 그의 고유한 “선”으로써 이러한 반역을 줄기차게 형상

화 하고 있다.

김형윤 (뿌리깊은 나무 편집장)

1970-1980 년대 다른 일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신문과 잡지에만 만화를 연재했다.

1990 년대에 들어 어린이 신문이나 잡지가 하나 둘 사라지고, 만화 시장의 주류는 잡지-단

행본 시스템으로 재편되었다. 이 시기 박수동은 주로 사보에 한 칸이나 한 페이지 만화를

연재했다. 2001 년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로 임용되어 대학 교단에 섰다. 2008 년 대

학을 퇴직하고 충북 한적한 산속 주택에 정착해 책 읽고, 산책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어쩔 수 없는 선생이자 어린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어른으로 평생을 사셨던 박수동. 생각

해 보면 박수동 만화 속 어른들은 모두 어린이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박인하 (만화 평론가)


대표작

 대표작으로「땅콩찐콩」「별똥탐험대」「번데기 야구단」「5학년5반 삼총사」「딸기코 감독」「고인돌」등이 있다.


약력

1941 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출생.

1945 년 해방과 함께 귀국, 부산에 정착.

1960~1965 년 사범학교 졸업 후 밀양 단산, 초동, 밀양초등학교에 부임.

1963 년 교사생활 중에 [새교실]에 투고한 만화가 게재.

1965 년 [아리랑]5 월호 ‘신인만화상’에 <천연기념물>을 발표하며 데뷔 후 결혼.

1966~1967 년 [서울신문]에 <솔봉이>를 연재.

1967 년 [경향신문]에 시사만화 <박고구> 연재 시작.

1968 년 [새교실]에 편집기자로 입사.

1973 년 한국기원 [바둑] 잡지에 <공배씨> 연재시작 ~ 2010 년 <만방 아저씨>로 연재를 끝내다.

1974~1992 년 [선데이서울]에 성인만화 <고인돌> 18 년 동안 연재, TV 광고와 상품 캐릭터로 사용.

1974~1980 년 어린이 잡지에 <소년 고인돌>,<별똥 탐험대>,<번데기 야구단>,<신판 오성과 한음>,

<5 학년 5 반 삼총사>,<신판 콩쥐 팥쥐>,<홍길동과 헤딩박>등을 연재.

1980 년 롯데제과 <스크류바> <빠삐코> CF 시작

1988 년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에 선임(회장 고우영).

1992 년 <공룡나라 우리 엄마>로 제2회 한국만화문화상 수상(문화부)

2001~2008 년 전주대 영상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2004 년 SBS 캐릭터 ‘고미’제작.

2015 년 [여성중앙]에 18 년 동안 연재된 <신혼행진곡>과<와이프 행진곡>을 묶어

금혼식 기념 만화를 한정 출판.

은퇴 이후 충북 음성 산촌의 전원주택에서 생활중.


수상

1992 년 <공룡나라 우리 엄마>로 제 2 회 한국만화문화상 수상(문화부).

2003 년 고바우 만화상 수상

2005 년 sicaf(서울국제만화에니메이션페스티벌)어워드 코믹 부문 대상 수상.

2021 년 황금펜촉상 수상

2021 년 명랑만화 5인방 공로상 공동 수상(길창덕, 신문수, 이정문, 윤승운, 박수동)


작가노트

마감시간에 40 년을 쫓기다 자유를 찾아 충청도 산골로 낙향했다. 심심해서 한시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한시 + 만화 = ‘한만시’라고 이름 짓고 쑥쓰러워 몰래 그렸다. 한자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한자를 만들기도 하고 한자를 그렸다. 도연명, 이백, 두보 등 술꾼 시인들의 음주시만 골라 그리다가 왜 우리나라엔 술꾼 시인이 없을까 생각했다. ‘고려 시인 이규보’를 아실랑가? 74 세로 생을 마감했던 그 해 초하루에 이런 시를 지었다. “올해는 시를 몇 편이나 짓고 술은 몇 잔이나 마시게 될까?” 그의 시와 산문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이 양반이 진짜 고려시대 사람 맞나?

분명 13 세기 사람인데 시의 소재나 감각이 20 세기이기 때문이다. 점잖고 무게 잡는 한시와는 거리가 먼 발상의 전환과 여유 그리고 기가막힌 유머. 그의 시에서는 술 냄새와 문자 향기가 진동을 한다. 13 세기에 노벨문학상이 있었다면 무조건 이규보다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늦 봄 5 월의 마지막날 강화도의 이규보 묘소를 찾았다. 술을 한 잔 따르고 절을 하면서 중얼중얼 고자질을 했다. “이규보 쌤, 못난 글쟁이 후손들을 용서 해 주세요. 지들은 도처에 문학관이니 기념관을 지으면서 쌤은 외면하고 있어요.”

- 박수동 작가노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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